의식주(행) 연용어의 등장과 치생(治生)의 식공간, 역사음식학 연구로서 음식문물학 연구방법론
Abstract
This study was conducted to investigate methods of studying traditional food culture with a focus on traditional dining space. The term ‘dining space’ in this paper refers to not only to the area in which food is eaten and prepared, but also place like farm or mountain where people make effort for their healthy and pleasant diet and life. Therefore, this investigation of dining space requires broader perspective including consideration of human nature, aesthetic appreciation, and healthy lifestyle. One of the most important aspects to studying historical food culture is figuring out significant information from various historical resources with proper research methodology. To search various resources for food history, this study included records of local farm products and living area which can show lifestyle as well as food. To determine the proper methodology, it is important to focus on the main concerns and historical background of the investigated society. This paper proved each society has different concerns by the example of history of using common term ‘food, clothing, shelter /and road’ (衣食住/行) by comparing Korea with China and Japan.
Keywords:
Traditional dining space, life governing, food history, material study, foodㆍclothingㆍshelter and road, food culture서 론: 역사음식학과 음식문화사 연구
이 글에서 다루려는 역사음식학은 문화사 연구의 방법론을 필요로 한다는 말을 달리 한 정도이다. 우리 학계가 현대문화 연구는 매우 방대한 스펙트럼으로 확장되었으나, 그에 비해 역사 속의 문화를 다루는 문화사 연구는 방법론적으로 더욱 활성화를 요청하는 형편이다.
문화사는 사(史)가 붙은 용어이듯이 기본적으로 역사학의 방법론을 필요로 한다. 어쩌면 인문학은 모두 역사학의 방법론을 기저로 삼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오늘이 아니라 어제까지의 일은 모두 과거의 시간으로 가버린 지나간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점이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지향처가 달라지는 지점이라 이를 수 있다.
실험과 통계 분석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조금이라도 열어가려는 관심은 자연과학의 방법론이고, 지나간 과거와 오늘까지의 현상을 통찰하고 이해하려는 관심은 인문과학의 방법론이 아닐까 한다. 비록 현재 우리 학계가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의 소양이 다르고 경계가 높아서 상호 소통하기 어려운 면이 많지만, 내일의 우리를 잘 열기 위해서 어제의 우리를 잘 이해하는 일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를 강조하지 않더라도 절대 필요한 작업이다.
따라서 역사음식학이 문화사 연구의 일환이라고 본다면, 문화사 연구가 가지는 기본적 방법론에 대한 이해와 천착이 필요하다. 방법론(方法論)은 자기 학문이 가지는 정체성의 확립을 위하여 거기에 필요한 제반 도구를 장만하는 일이다. 음식을 준비하는 것과 음식을 장만하는 일이 좀 차이를 지닌 것과 같이 방법론을 개발한다는 것은 그 시대의 자료에 적합한 연구방식을 일련의 프로세스를 통해 ‘장만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방법론과 자료 개발은 함께 연동되는 밀접한 관계라 할 수 있다.
덧붙여, 방법(方法)이란 용어에서 방(方)은 무슨 의미인가할 때, 다소 의외의 연결성이나 고대 도교의 원류인 진한(秦漢) 방선도(方仙道)에서 자연의 원리와 물리를 궁구하던 전문가 계층인 방사(方士)의 용법과 상통한다. 당시 천문 관측과 역법 추보 등의 천문학 전문가 중에 방사 출신이 적지 않게 기여하였고, 자연의 변화 원리를 음양 소장과 오행 순환으로 설명하던 음양가의 역할을 다름 아닌 방사 계층이 수행하였는데, 이들이 자연의 원리를 탐구하던 제반 모색 방식을 방(方)이란 말로 담아낸 것이라 하겠다(Kim IG 2008: 73-103). 고대 용어로 방술(方術), 방기(方技), 방선(方仙) 등이 각 분야의 기술 전문가 관점을 내포한 것은 그런 용법 때문이다. 영어로 방법(method)과 방법론(Methodism)이 근대학문의 매우 중요한 과정으로 등장한 것은 널리 주지하는 바이다. 흥미로운 점은 서로 시대와 지역이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지만, 방법론이 근대 종교 방면에서 응용된 흐름이 영국의 18세기 신학자 존 웨슬리가 창시한 감리교(監理敎)에서도 엿볼 수 있다. 감리교는 영어 메소디즘(Methodism)의 번역어인데, 메소디즘은 뜻그대로 하면 당연히 방법론을 뜻하는 교명이다. 이를 19세기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 받아들일 때 당시 어법으로 감리(監理)의 교파로 번역한 정도라 하겠으며, 현재식이면 방법교라고 번역하였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각종 건축 공사 현장에서 감리(監理)하는 전문가의 역할은 필수이며, 그 감리사가 건축의 과정이 올바로 적용되는지 아닌지 감독하듯이 신에게 이르는 올바른 방법의 과정을 관리(管理) 감독(監督)한다는 의미가 감리교 교명에 깔려 있다.
다소 에둘러 갔지만 방법론이 지닌 학문적 중요성을 피력하기 위하여 아주 먼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자연을 탐구하는 과정을 방법론이란 관점으로 지칭하여 왔음을 환기하고자 하였다.
이 글에서 역사음식학 연구로서 음식문화사를 탐구하는 방법론의 몇 가지 대목을 짚어보면서, 본고의 주제인 치생(治生)의 식공간(食空間) 문제를 더듬는 음식문물학 연구방법론을 제기하려고 한다.
의식주 생활사 관점 등장과 근대 위생적 음식문화의 시대성
먼저 언급할 방법론으로 문화사는 매 시대에 따라 다른 방법론과 자료의 개발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매 시대가 추구하는 문화사 키워드를 개발하고 조정할 필요성이 커진다. 이 문제는 곧장 ‘개념 정의’ 문제에 직결되는 경우가 많다. 역으로 말하면 개념 정의를 정합적으로 하는 것에서 학문의 정체성과 분석의 실타레가 심화될 수가 있다.
지금은 우리가 ‘음식(飮食)’이란 말을 너무나 일상용어로 쓰고 있지만, 과연 전통시대에도 그렇게 쓰이고 있었는가 하는 물음이다. 음식은 흔히 의복과 주거 영역과 물려서 ‘의식주(衣食住)’란 연용어로 쓰인다. 아직도 잘 풀리지 않는 문제는 왜 의(衣)가 식(食)보다 앞서 있는가 하는 점인데, 명쾌한 근거를 찾아야 하는 숙제가 주어져 있다.
1800년대 벽두에 나온 『규합총서』에는 음식을 다루는 ‘주사의(酒食議)’가 첫 편으로 편장되어 있다. 주지하듯, 전통시대 음식조리서로 크게 중시되는 빙허각(憑虛閣) 이씨(1759∼1824)의 『규합총서(閨閤叢書)』(1809)는 제1 주사의(酒食議), 제2 봉임칙(縫紝則), 제3 산가락(山家樂), 제4 청낭결(靑囊訣), 제5 술수략(術數略)으로 총 5편 구성을 지닌다(Kim IG 2013: 251-282). 여기서 두 가지 물음이 제기된다. 하나는 그 구성이 식의주 순서에 대응한다는 점이다. 제1 「주사의」는 술과 식의 음식편이고, 제2 「봉임칙」은 바느질 길쌈 등에 대한 의복편이며, 제3 「산가락」은 밭일과 목양하는 대략 가정 살림의 일을 다루어 주거편으로 볼 만하다. 그렇다면 의식주의 연용어 관점은 어디서 연원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다른 하나는 음식편을 당시 발음으로 ‘주사’(酒食)이고 현대 발음으로 ‘주식’(酒食)이라 편명한 것인데, 왜 ‘음식(飮食)’이 아니라 주류(酒類)를 뜻하는 ‘주식(酒食)’으로 표방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전통시대 명문가에서 의례와 손님 접대를 위해 술을 늘 장만하던 때문이라 할 수 있을지는 좀더 고심할 필요가 있다.
조선시대 음식서와 산림서류(山林書類) 문헌에 큰 영향을 주었던 원나라의 거질 류서류 『거가필용(居家必用)』 10집 중 음식편(제6 己集, 제7 庚集)에서 전반부가 다품(茶品), 탕수품(湯水品), 갈수품(渴水品), 숙수품(熟水品), 장수품(漿水品)에 이르는 음용(飮用) 식품을 먼저 수록하고, 이어서 과식품(果食品), 주국품(酒麴品), 초류품(醋類品), 장류품(醬類品)을 다루고 있다(Translated Geogapilyong: food chapter, 2015) 음용류의 분류가 세분된 점이 인상적인데, 제1 다품은 북송대에 매우 발달하여 새로운 음수품으로 부각된, 진귀한 차를 다리고 우려 먹는 다수품(茶水品)을 말하고, 제2 탕수(湯水)는 숙취해소의 향등탕이나 갈증 해소의 감람탕 등 마시는 탕수품을 이르고, 제3 갈수(渴水)는 갈증과 피로를 돕는 능금갈수, 모과갈수, 오미자갈수, 포도갈수 등 청량음료 종류의 갈수품을 이르며, 제4 숙수(熟水)는 침향숙수, 정향숙수 등 끓인 물에 꽃이나 열매를 담가 우려내어 마시는 전통음료를 이르고, 제5 장수(漿水)는 계피장수, 모과장수 등 약재나 채소, 좁쌀밥 등을 혼합하여 숙성시켜 걸러 마시는 건강음료를 지칭하고 있다. 무려 다섯 종류의 음용(飮用) 위주 식품이 첫째로 열거된 것이다. 이런 흐름이라면 주식(酒食)이 아니라 음식(飮食)이란 호흡이 어울린다.
그렇다면 우리는 음식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하는 물음이 제기되고, 어떻게 답변하는 것이 좋은 문화사적 관점인지를 고심하게 한다.
다음으로 연용어로서 ‘의식주’의 용법 문제이다. 인간 생활의 필수 요소로서 의, 식, 주의 3대 요건을 지칭한 말이고, 민속학을 비롯한 현대 학문에서 생활사 연구가 무엇인가 물으면 대개 의식주의 생활사를 언급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우리가 널리 일반적으로 쓰는 의식주란 말이 문제는 조선시대 문헌에서 이 연용어가 잡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에서 ‘의식주’로 검색하면, 놀랍게도 검색 건수가 0건이다. 다만 번역문에서 단 1건 검출되는데, 중종 25년(1530) 5월 12일 조강(朝講)에서, 죄인들을 변방에 입거(入居)시킬 때, “대체로 의식주(衣食住)의 안정은 사람이 가장 하고싶어 하는 것이니, 백성들을 이주시킬 때에는 반드시 그 전토(田土)를 후하게 주어야만 그들이 원망을 갖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신하의 진언에서 보인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원문을 검토하면, 다음처럼 ‘의식안거(衣食安居)’를 현대번역어로서 ‘의식주의 안정’이라 한 것을 알 수 있다.
- ○ 자료 1: 중종 25년(1530) 5월 12일조. 御朝講. 侍講官黃憲曰: ··· 夫衣食安居, 乃人之所大慾也, 必利其土田, 然後民無怨心矣. 今國家以作罪之人, 爲之入居者, 爲其實邊也. (*실록 홈페이지의 원문 依食은 원전 확인 결과 衣食의 오기여서 바로잡음.)
이처럼 조선시대 용법으로서는 의식주가 아니라, 『태종실록』 16년(1416) 3월 9일조에서 “衣食足而後, 治禮義.”(의식이 족한 뒤에야 예의를 다스린다.)와 같이, ‘의식(衣食)’의 두 글자로 연용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주거가 붙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가 늘상 쓰는 의식주란 용어는 어떻게 된 것인가? 갑자기 당혹스러움과 어려움이 동시에 밀려온다. 본고가 이 문제를 주된 이슈로 천착하려는 것은 아니기에 몇 가지 시대적 정황을 짚는 것으로 대신하려 한다.
먼저 중국 고전 문헌에서는 어떻게 쓰고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중국어 포털사이트로 가장 유명한 바이두(百度)로 의식주를 일차 검색하였다. 이번에는 당연히 검색되어야할 의식주 항목 자체가 설정되어 있지를 않는다. 모두 ‘의식주행(衣食住行)’의 4자 연용어로 접근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의식주행이란 말은 근대 중국의 혁명 선도자이자 삼민주의 정치가로 유명한 손문(孫文, 1866∼1925)의 다음 『민생주의(民生主義)』제3강(講) 강론 어구를 연원으로 삼고 있다.
- ○ 자료 2: 『민생주의』 제3강. “여러분 모두가 각자의 의무를 다하면, 여러분 모두는 자연스럽게 의식주행(衣食住行)의 4종 수요(需要)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大家都能各盡各的義務,大家自然可以得衣食住行的四種需要.)
여기서 의식주는 우리도 쓰는 어법이니 동일하고, 마지막 제4 요소인 ‘행(行)’의 의미를 잡기가 어려운데, 우리 한자식이면 행위, 행동 정도가 될 터이나 중국어법에서는 행로(行路)로 인식되어 있고, 사람들이 길을 통행하고 차량이 도로교통하는 일 곧 통행과 교통에 관한 일로 풀이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길 다니는 교행 교류를 통해 사회적 인간으로서 기본 생활 영위를 한다는 생존적 당위성을 지칭하는 듯하다.
따라서 인간 생활의 필수적 4종 요소로 제시한 의식주행은 옷입고, 밥먹고, 집짓고, 길다니는 일을 뜻한다고 정리할 수 있다. 현대 중국어로는 “천의(穿衣), 흘반(吃飯), 주방(住房), 행로(行路)”로 풀이되며, 우리말로는 “옷, 밥, 집, 길”을 뜻한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우리 문화 용법으로는 상당히 낯선 의식주행의 4요소로서 근현대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생활 양식을 접근하고 인식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中国古代衣食住行』(許嘉璐, 北京出版社, 1988), 『唐代衣食住行研究』(黃正建, 首都師範大學出版社, 1998), 『宋代衣食住行研究』(林正秋, 中国文史出版社, 2013)등 연구제목에서 죄다 의식주행의 4범주가 표명되어 있다.
그렇다면 같은 한자문화권인 일본에서는 어떤지 알아본다. 일반 포털인 야후 코리아에서 의식주를 검색하면, 곧바로 大辞林이나 디지털대사전에서 생활 기초로서 “의복(衣服)과 식물(食物)과 주거(住居)”의 뜻과 “살림살이나 생계(暮らし向き, 生計), 또는 이를 세우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일본어 위키사전에서도 의식주는 생활의 필수 요소로 설명되며, “의식주는 인간이 생활함에 필요한 식(食事), 의(衣服), 주(住居, 風雨를 견뎌 잠잘 수 있는 곳)를 확보하는 것”으로 풀이한다. 우리말 한글 사전은 옷과 음식과 집을 통틀어 일컫는 말로 인간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로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일본문화는 우리와 동일하게 의식주의 3요소로 일컬고 있다. 결국 한자문화권에서 한일이 같고 중국이 좀 다르다. 아마도 이런 배경에는 우리가 일본을 통해 근대문화를 열어간 역사경험 때문이라 추단할 수 있다. 또 우리는 주로 음식(飮食)이라 연용하는 반면에, 중국과 일본에서는 식물(食物)이란 말도 자주 쓰는 차이를 보인다.
한중일 문화권에 따라 다소의 용법 차이를 짚어보았다. 의식주란 연용어가 조선시대 전통용어가 아니라면 아마도 근대시기 새로 도입된 용어라 추정할 수가 있다.
이 문제를 들어가 보기 위해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일제시기 문헌을 살펴보면, 대략 다음 10종의 책들이 잡힌다.
- ○ 자료 3: 1850∼1945년까지의식주 제명 검출 단행본 목록
1. 『西洋衣食住』, 片山淳之助著, 1867
2. 『衛生と衣食住』, 福田喜八(琴月)著, 1911
3. 『朝鮮人の衣食住』, 村上唯吉, 圖書出版部, 1916
4. 『世界の衣食住』, 櫻井彦一郞(鷗村)著, 丁未出版社ㆍ東京寶文館藏板, 1919
5. 『生活改善と衣食住問題』, 山本灸太郞著, 1921
6. 『衣食住の衛生』, 藤原九十郞著, カニヤ書店, 1926
7. 『衣食住』, 中山忠直著, 寶文館·博文館, 1927
8. 『衣食住の變遷』 第1 食物編, 赤堀又次郞著, ダイヤモンド, 1932
9. 『健康增進と衣食住』 第3卷, 杉本好一ㆍ入鹿山勝郞共著, 保健衛生協會, 1941
10. 『衣ㆍ食ㆍ住』, 朝倉文夫隨筆集, 日本電建株式會社出版部, 1942
가장 이른 시기 자료로 『서양의식주』(1867)가 있다. 이 책은 저자명이 片山淳之助(카타야마 준노스케, Katayama Jun’-nosuke)로 되어 있지만, 실은 일본 메이지시대 난학자(蘭學者)로 경응의숙(慶應義塾)을 창설하고, 『시사신보(時事新報)』를 창간하는 등 일본의 서구 문화 흡수를 역설하면서 일본의 근대적 계몽과 교육에 진력한 후꾸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가 필명으로 쓴 책이다. 그의 『福澤全集』 제2권(福澤諭吉著, 時事新報社, 1898) 중에 동일한 건이 『西洋衣食住』로 수록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1854년 나가사키에서 난학(蘭學, 네덜란드)을 배우고, 1858년 에도에 난학숙을 열었으며, 1860년 막부의 견미(遣美) 사절 수행원, 1861∼62년 유럽 6개국 파견사절, 1867년 견미사절 등 미국와 유럽을 순방하면서 새로운 서구 문명을 접하고서, 이를 접목하여 일본의 부국강병과 남존여비 철폐 등 일본 근대문명 발달의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고 평가되는 메이지시대 대표적 계몽사상가이자 난학자이다.
그는 『서양의식주』 서문에서 근래 서양복을 사용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외부 활동에 매우 편리하다면서 서양복의 착용성을 주목하였고, 아울러 서양의 식사에 사용되는 여러 도구와 침소의 기물을 도해로 그려 소개하고 있다.
그 중 「食之部」에서 서양의 테이블 식탁(Fig. 1)과 평면형접시, 물컵, 포크와 나이프, 티스푼과 찻잔, 물병, 그리고 식사 전후 손을 씻기 위해 물병과 수건 등을 올린 세수대(Fig. 2) 등을 소개하고 있다. 그의 눈에 인상적으로 비친 서양 식사 도구라 하겠다.
이같이 메이지시대 일본 사상가들이 당시 발달한 서구 문명의 기초를 의식주라는 3대 생활 토대를 중심으로 나누어 관찰하는 입장에서 접근되고 있다.
의식주 3자를 인류의 생존과 문명의 기초로서 주목하는 관점은 『世界の衣食住』(櫻井彦一郞, 1919)에서 잘 나와 있다. 그 서문에서 세계 제국(諸國)의 상호 관계가 의식주 재료의 유무와 상통하고, 무역과 외교뿐만 아니라 국민 의식주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정치와 사회 정책의 추축이며, 인생, 사회, 정치, 경제, 외교, 국방, 과학 등의 제반 문제가 모두 복합되는 영역임을 강조하고 있다. 의식주 중 ‘의복은 문명의 출발점’(제1장)이라는 인식 아래, 의복과 동식물 천연자원물, 면화의 역사와 제품, 양잠과 서양의 비단, 수피(獸皮)와 모피(毛皮), 염색과 의물(衣物), 방직과 편물(編物) 등을 다루고 있다.
음식편과 관련하여 다룬 편장명을 참조삼아 보면 다음과 같다.
- 제19장 세계의 소맥
- 제20장 소맥의 수요
- 제21장 쌀의 생산하는 나무
- 제22장 일본인의 반미(飯米)
- 제23장 잡곡의 종류
- 제24장 특이한 음식물
- 제25장 수육(獸肉)
- 제26장 우유
- 제27장 야조(野鳥)와 가금(家禽)
- 제28장 하해(河海)의 어족(魚族)
- 제29장 어개(魚介) 해조(海藻)
- 제30장 야채(野菜)
- 제31장 식용과실(1)
- 제32장 식용과실(2)
- 제33장 차ㆍ커피ㆍ코코아
- 제34장 연초
- 제35장 주정(酒精)음료
- 제36장 소금의 공덕
- 제37장 사탕과 문명
이중 제31장 한 대목을 살피면, 과실 범주를 크게 대별하여 밤, 호도, 추실(椎實, 모밀잣밤) 등 건조한 상태의 건과(乾果) 종류와 배, 감, 사과, 바나나, 포도 등 수분이 풍부하고 육질이 많은 장과(漿果) 종류의 양대 범주로 분류하고 있다. 이러한 양대 과물(果物)이 수천년 전부터 인류가 섭취하여 왔고, 전세계 매우 다양한 생산지와 그 이동경로를 역사 자료를 언급하면서 개괄하고 있다. 소위 과실의 인류문명사적 접근을 보여 흥미롭다.
전반적으로 음식편에서는 전세계 핵심 식료품의 수급과 재배 문제를 다루었고, 주거편까지 마지막 의식주를 다룬 결론으로서, 저자는 일본인의 의식주가 최저 수준의 생활상을 보이고 있으므로 이 결핍된 의식주에 대한 혁명적 위정(爲政)이 절대 필요함을 역설하는 것으로 매듭짓고 있다.
한편, 이 시기 자료들을 일별할 때 20세기 전반기 의식주 문제는 주로 위생(衛生) 관점에서 접근되는 성격임을 시사한다. 『衛生と衣食住』(福田喜八, 1911), 『生活改善と衣食住問題』(山本灸太郞著, 1921), 『衣食住の衛生』(藤原九十郞著, 1926), 『健康增進と衣食住』(杉本好一ㆍ入鹿山勝郞共著, 保健衛生協會, 1941) 등이 그런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
이중 『衛生と衣食住』(福田喜八, 博文館, 1911)를 통해 위생과 의식주 문제를 짚어본다. 그 서문에서 의식주는 인간 생존에 절대적인 3대 요소이고, 가정은 의식주를 기초로 성립한 단위임을 말하였고, 특히 사람의 생명 지속에서 건강한 상태의 신체와 환경의 의식주 요건을 갖추는 일이 긴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말하자면 의식주는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는 생존도구로 접근되어야 하며, 이에 3자의 위생적 유지와 조화가 건전한 가정을 성립시키는 전제라고 피력하고 있다. 이는 가정 단위가 의식주의 건강성과 위생성을 담지하는 중요한 기반임을 역설한 것이라 주목된다.
이런 의식주 위생론 관점 아래 제1 의복편은 의복의 보온성과 통기성 및 흡수성을 설명하면서, 의복의 청결성, 화장 두발의 위생성 등을 다루고 있다. 제2 음식물편(食物篇)은 일용식품의 보건식료(保健食料)와 표준(標準)식료 관점을 크게 강조하였으며, 1장 음식물과 영양(營養), 2장 자양물(滋養物), 물과 우유를 다룬 3장 음료(飮料), 소금과 장유(醬油), 사탕을 다룬 4장 부식품, 술과 커피 향료 담배를 다룬 5장 특기품(特嗜品), 얼음과 계피물, 팥빙수(氷汁粉), 쉽게 부패하는 복숭아와 오얏 등을 다룬 6장 여름철 기호품, 끝으로 7장 위(胃)의 위생, 8장 치(齒)의 위생을 수록하고 있다(Hukujawa Yukichi(1911)에서 수분 함량 조사 결과, 오얏이 84%, 살구가 81%, 복숭아가 80%여서 이행도(李杏桃) 순서로 부패하기 쉬움을 언급하고 있다).
2장 자양물에서 자양물(滋養物)이란 각종 자양질을 함유하고 있는 음식물을 지칭하며, 각 자양분 성질을 알아야 각기 효용성 있는 음식 용법을 발달시킬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여기에 다룬 식물(食物)은 1. 곡류(穀類), 2. 숙류(菽類), 3. 근괴류(根塊類), 4. 경엽류(莖葉類), 5. 해초류(海草類), 6. 균류(菌類), 7. 종실류(種實類), 8. 어류(魚類), 9. 패류(貝類), 10. 조류(鳥類), 11. 수육류(獸肉類)로 분류하여 접근하고 있다.
또한 제3 주거편에서 1장 주거와 위생, 2장 실내 위생, 3장 대소(臺所, 주방 등) 위생, 4장 입욕과 위생, 5장 해충과 구제(驅除), 6장 가정과 미균(黴菌)을 편장하여 다루었는데, 대다수가 음식 관련성 내용이 많아 주목된다. 1장 건축재료에서 내세운 투기성(透氣性)과 도온력(導溫力), 투온성(透溫性), 함균량(含菌量) 등은 인간 신체의 위생성 문제만이 아니라 음식물의 보관 관리에도 영향을 주는 문제이며, 2장 실내 채광과 환기성(換氣性)이나, 5장 해충 구제 문제, 6장 가정 내에서 살균과 소독하는 문제 역시 간접적 영향을 끼친다.
무엇보다 3장 대소 위생에서 주방과 우물, 배수 문제는 음식 유지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는 영역이다. 가장 먼저 주방개량 문제를 들고 나오고 있다. 다음 그림은 외국의 주방을 보여주는 장면이며(Fig. 3), 근래 서양 요리법이 각양 도입발달하면서 관련 주방의 개량 필요성도 커지고 있는데, 그 개량의 필요 조건은 편리성과 위생성의 두 가지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구체적 구획으로 개량한 대소는 서양의 것을 참조하자면 주방과 식기(食器) 세척장, 육방(肉房), 식기 보관장, 석탄실, 회입장(灰入場, 재처리)의 6가지로 성립하며, 이들 배치가 상호 연속되도록 구획의 효율성을 높이고, 주방 크기는 2칸 반에서 5칸 이상이 되고, 요리대가 중앙에 놓이고, 요리품의 열기를 처리하는 시설 등의 방안을 거론하고 있다. 이처럼 의식주에서 음식과 주거 문제가 서로 연결되는 상관성 관점임을 피력하여 주목된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근대 음식사 접근법에서 위생의 식료품 수급과 위생의 식공간 개량은 중요한 키워드로 제출되고 있다. 그 근저에는 선진문명의 서양 모델이 깔려 있고, 이를 참조하여 근대 일본의 의식주 조건을 바꾸려는 다방면의 시도가 이루지는 상황이다.
같은 시대 문제의식이 투영된 조선의 경우를 살펴보면, 『朝鮮人の衣食住』(村上唯吉, 1916)가 상당히 이른 시기에 나온 자료물이라는 점에서 우선 주목할 만하다. 이 책의 저자는 무라카미 타다요시(村上唯吉)이지만, 그 기반이 된 자료는 1912년부터 2년간 조선에 주둔한 제8사단 군의부장(軍醫部長) 사카모토(坂本武戌)가 소속 부대 군의(軍醫) 22명를 통해 시행한 조선인의 의식주 조사자료이며, 여기에다 총독부의 여러 산업통계와 편자 무라카미 자신의 조사자료를 붙여 편찬한 것이다(『근대문화사 읽기로서의 조선의 복장』(2017.9) 중 <부록: 조선의 의식주> 참조). 조사대상은 제8사단 군의부가 위생시설의 참고자료를 얻기 위해 시행한 목적이어서 이들이 주둔한 경흥, 혜산, 종성, 함흥, 개성, 원산, 의주 등 북선(北鮮, 조선 북부) 지역들 위주이다.
여러 명이 붙인 서문을 보면, 의식주에 대한 국민의 기호는 그 유래가 오래되어 변혁하기 쉽지 않으나, 그 관습과 인습이 반드시 합리적이거나 올바른 위생과도 일치하지 않으며(총독부 공업전습소장 농학박사 도요나가 마리), 조선 시찰이나 직무 수행, 사업 경영에서 조선인의 생활상 곧 의식주의 현황을 연구하고 자세히 이해하지 않으면 안되며(총독부 의원원장 의학박사 하가 에이지로), 무릇 한 민족을 연구함에 있어 맨 먼저 눈을 돌려야 하는 부분은 의식주 세 가지이고, 의료나 위생 종사자뿐만 아니라, 정치가와 군인, 학자, 상공업자, 농업가도 충분히 이 세 가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고(의학박사 사토 쓰네마루), 의식주 세가는 인간생활의 3대 필수 요건으로서 위생시설과 농업경영, 사업경영 등에 그 땅의 풍습과 습관 및 기호를 조사하는 일은 가장 필요하고 유익하다(저자 무라카미 타다요시)고 하면서 식민지배 목적성과 의식주의 위생적 개량 목적성을 내세우고 있다.
그 제2장 음식편은 제1항 개설, 제2항 주식물(主食物), 제3항 부식물(副食物), 제4항 식사 회수와 섭취량, 제5항 기호품, 제7항 식료(食料)와 농산물, 제8항 식료와 수산물, 제9항 포주소(庖廚所), 제10항 물(水)에 이르는 편장 구성을 하였다.
1912년 관찰된 조선인의 식생활 관습을 보면, 일반 상민(常民)이 쌀, 보리, 조, 콩, 피, 옥수수, 감자 등의 혼합잡곡을 섞어서 먹으며, 대다수가 1일 2식이되, 매번 반드시 온취(溫炊)하여 먹는 음식 관습을 보고하고 있다.
여름철 점심으로 오이(甛瓜)를 즐겨 먹으며, 이 오이가 숙성되는 시기에 곡물의 소비량이 크게 감퇴하는 흐름을 보인다. 부식물은 가축의 육류와 채소류를 위주로 하고, 야조(野鳥)와 산수(山獸) 먹는 것은 꺼리면서 견육(犬肉)은 좋아하는 풍습을 지니고 있다. 부식물은 반드시 고추(蕃椒), 마늘(蒜), 파(葱)를 혼용하고, 이를 넣은 지물(漬物)은 상하 공히 즐겨 먹는다. 반찬은 숟가락과 젓가락(匙箸)을 함께 사용하고, 밥은 숫가락으로 먹고 부식물은 젓가락으로 골라집어 먹는다, 식후에는 차를 마시지 않고, 숭늉(熟湯)이라 칭하는 취사후 남은 반탕(飯湯)을 마신다. 식기 기물(器物)은 놋쇠(眞鍮製) 또는 자기(磁器)를 대개 쓰며, 드물게 목기(木器)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외 술, 담배, 과물, 과자는 크게 좋아하는 기호식품이라 관찰하고 있다.
당시 조선인의 부식물 종류는 콩으로 만든 두부, 청장(淸醬) 등이 있고, 소채류로 배추, 상추, 규(葵), 춘국(春菊), 청근(菁根), 미나리, 생강, 파, 마늘, 오이, 가지 등이 있다. 다양한 부식물 조리법을 설명하는데, 소고기, 닭고기는 매우 세밀히 물에 씨고 간장에 담구어서 생식(生食)하고, 조수육(鳥獸肉)은 경골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먹으며, 고기의 육즙은 소금으로 간하는 등 여러 방법으로 조리하며, 소꼬리, 넓적다리 등을 끓여 먹는다. 또 부식물은 주로 탕으로 만들어 먹고, 또는 소채와 육고기를 넣어 끓인다. 조선어로 고추장은 된장(味噌) 7할과 고추(唐辛) 3할을 섞은 것으로 매우 소량을 사용한다는 등등,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각 지역의 부식물과 간식물 상황도 자세히 채록하여 중요한 관찰보고서 역할을 한다.
제3편 주거편 중 제3항 7절 실내구획에서 실내공간은 통상적으로 내방(內房)과 객방(客房), 부방(釜房)으로 대별되나, 가난한 가정은 안방과 부엌이 서로 통하고, 중류이상은 여러 방들이 시설되어 있으며, 북선 지역은 부엌을 거실과 우마실(牛馬室)과도 공유함을 관찰 기록하고 있다.
『朝鮮人の衣食住』(1916)는 이와 같이 근대 한국인의 생활상을 의식주 관점으로 갈라서 조사보고한 중요한 자료물이다. 더욱이 이 보고서는 19세기 후반 이래 근대 일본이 인간의 필수 생활 요건을 의식주라는 3대 범주로 갈라서 수립한 관점이 그대로 조선에 반영된 가장 초기의 작업물이라는 점이다. 또한 음식 범주를 주식물(主食物)과 부식물(副食物)로 나누어 접근한 초기 작업물이어서 고찰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이는 음식물을 식료(食料)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다.
이처럼 시대에 따라 접근하는 관점이 달라지고 또 그에 따라 산출되는 결과물의 분석 방법론 내지 분석 키워드도 상응하는 관계임을 읽을 수 있다.
이론을 좀더 분화시키면, 의식주의 3대 분립 관점을 어떤 중점적 관심으로 접근할 것인가에 따라 미시사와 거시사가 다시 갈려나간다.
이 『朝鮮人の衣食住』(1916)에서 취한 관심은 당시 조선인의 식관습 관찰에 두어져 있다. 1930년대 전후 전개된 조선총독부의 『생활상태조사』 보고서는 1권 수원군(1929), 2권 제주도(1929), 3권 강릉군(1931), 4권 평양부(1932), 5권 경주군(1934)으로 연속 조사된 결과물인데, 역시 당시 조선인의 일상식 관습과 음식 상황을 관심사로 둔 것으로 미시사적 음식문화사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에 의식주의 식을 식량 문제로 접근할 때는 보다 대단위의 역내간 내지 세계 각국간 곡물자원 유통과 재배 문제로 보게 된다. 『生活改善と衣食住問題』(山本灸太郞著, 1921)는 거시문화사적 관점 아래 식량문제를 논의한 보고서이다. 식량의 농업적 산업정책을 주로 논의하면서, 조선의 간전(墾田) 조성법, 비료제조 개선책, 식량품 수입문제, 우마의 축산정책, 어업장려 정책, 공설시장의 개량과 활성화 정책, 냉장시설의 선박과 차량 장려책 등을 다루고 있다.
『衣食住』(中山忠直著, 1927)에서 백미(白米)와 현미(玄米)에 대한 취사방식 차이와 현미식에 대한 인식의 부족 문제, 판매보급의 필요성을 논의하고 있는데 거시음식사 접근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자료범주가 더 넓어져 본고에서 다루지는 못하지만, 위생의 음식학 키워드 못지 않게 20세기 전후 근대 음식문화사를 지배하는 키워드는 영양학적 음식문화 영역이다. 『生活改善と衣食住問題』(1921)에서 우유를 숭배하는 것은 맹신에 가깝지만, 모유의 부족과 우유의 대용물 방식을 논의하거나, 육식의 해독성과 동물학적 분석을 시도한 것 등은 영양학적 접근이다.
『健康增進と衣食住』(第3卷, 保健衛生協會, 1941)에서 다뤄진 음식의 접근법은 음식의 질량(質量)에 관한 것으로 영양과 음식의 관계성을 다룬 자료다. 식질(食質) 문제라 이를 수 있는 제1편 음식의 질(質)에서 칼로리 함원(含源) 문제를 함수탄소(含水炭素, 지금의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의 3요소로 나누어 접근하고 있으며, 무기질 음식과 식품의 소화성, 호르몬과 영양의 관계, 비타민의 국제 표준 등을 다루고 있다. 제2편 음식의 양(量) 곧 식량(食量)의 문제는 음식물의 칼로리 요구량, 단백질 요구량, 무기질 요구량, 비타민 요구량 등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런 이론 기반 위에 제3편에서 영양적 식생활 문제를 주식(主食)과 부식(副食)으로 나누어 접근하는 것으로 매듭짓고 있다.
또한 앞서 『衛生と衣食住』(1911)에서도 보였지만 음식과 위생의 관점은 이전 시대에 없던 새로운 근대학문적 이론이다. 근대 인간으로서 성립하는 근거로서 음식의 건강성과 위생성을 강조하고 피력한 것이다.
다소 두서없이 논의하였지만, 근대 음식문화사를 접근하는 방법론으로 식량(食糧)으로서의 거시문화사 관점과 식관습에 대한 미시문화사 관점 또는 영양과 위생으로서의 음식문화사 관점 등이 서로 연결되지만 다른 천착을 요구하는 것이라 하겠다.
현재 우리 학계는 여전히 근대 조선에서 이루어진 각종 음식문화 조사자료에 대한 전체적 집성이 필요하다. 부분적이지만 가장 이른 시기 조선인의 생생한 음식관습 보고서라 할 수 있는 『朝鮮人の衣食住』(1916)라든가, 1930년대 전후 각 지역별 상세 조사한 『생활상태조사』(1929∼1934) 보고서 등 많은 음식문화보고서류가 있으며, 이들을 비롯하여 유관한 자료를 개발하여 그 내용을 총정리함으로써 당시 조선의 근대음식문화사를 재구성할 토대를 구축할 필요성이 매우 크다(Kim IG 2015b: 81-109).
이때 일제강점기의 조선문화를 다룬다는 것은 지금도 이념성 문제로 인해 어려운 점이 많지만, 근대학문은 학문 자체를 위해 학문을 한다는 다소의 맹목성을 지닌 바여서 학문에 필요한 내용을 분리 집성하는 학문의 아카데미를 추구할 만하다. 또한 앞서 의식주란 3대 생활 범주론 자체가 전통시대에 없던 관점이고 일본의 근대학문에서 비롯한 이론이었듯이, 일본 근대음식학의 흐름에 대한 연구가 병행되지 않으면 근대조선의 음식보고서 이해가 견강부회로 이끌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주식물과 부식물의 분립과 부식물의 세부 분류 이론 등 식료(食料)와 식품(食品), 식질(食質)과 식량(食量), 식성(食性)과 식습(食習), 거시 식량(食糧)과 식산(食産), 식물(食物)과 식사(食事), 식기(食器)와 식구(食具), 식구(食口)와 식솔(食率), 식반(食盤)과 식상(食床), 식단(食單)과 찬선(饌膳), 식료(食療)와 식치(食治), 식찬(食饌)과 반찬(飯饌), 곡식(穀食)과 과식(果食), 채식(菜食)과 육식(肉食), 식수(食水)와 주식(酒食) 등 음식 관련 많은 키워드들이 글자가 다른 만큼이나 분화 발달되어 왔다. 음식이 인류문명사의 핵심 줄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요컨대 이론과 자료의 상응된 개발이 연구방법론의 활성화를 이끌 것이라 기대한다.
치생의 식공간과 음식문물학 연구
식공간은 음식을 둘러싼 공간의 문제여서 공간학 관점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그 공간을 물리적으로 볼 것인가 아니냐에 따라 다른 방향성이 노정된다. 어쩌면 수많은 공간의 중첩성 속에서 식공간의 유의미하고 복합적인 의의를 읽어낼 지 모르겠다.
다소 낯설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로 전통시대 달력인 역서(曆書)에 필수적으로 수록되었던 <가취주당도(嫁娶周堂圖)>자료부터 살펴본다. 주당도(周堂圖)는 아홉칸 구궁(九宮)과 중앙을 뺀 팔방위의 팔풍(八風) 구조에다 전통시대 사람들이 추구하던 일상생활사의 공간을 담으려 하였던 술수민속적 도면이다.
<가취주당도>는 혼인하고 시집가는 날을 택일(擇日)할 때 사용하는 남녀와 생년에 따라 다른 방향으로 순환을 시키는 방식이다. 가까운 시대 전통역서인 『대한 광무10년 세차 병오 명시력』(1906)에 수록된 <가취주당도>는 다음 그림과 같다(Fig. 4, Kim IG 2014b: 109-131).
그 주당도의 궁명(宮名)을 보면, 일반 가정의 주택구조를 방불케 하여 <가택(家宅) 주당도> 성격을 지닌다. 각 궁에다 방위명을 매겨 살펴본다(Fig. 5).
가정살림의 중심은 며느리이고 부엌일을 담당하므로 좌측 해뜨는 동쪽에 배치하였고, 그 좌우에 며느리의 역할인 주방(廚)과 부엌(竈)을 두었다. 보통 전통시대가 주방과 부엌을 통합한 것으로 인식되지만, 여기서는 그 둘을 분리하고 있어 흥미롭다. 그 맞은 편 서쪽에는 대청마루인 당(堂)을 배치하여, 가옥의 중앙이자 가정의 혼상제례(婚喪祭禮) 공간임을 시사하고, 또 가족이 만나는 일상의 공유공간을 뜻한다. 그 당의 좌우에는 시어머니(姑)와 시아버지(翁)의 방을 두었다.
북쪽에 배치된 제(第)는 안방(第宅)을 지칭하며, 집안 전체를 남면(南面)하여 굽어본다. 부엌의 옆에 배치한 것은 역시 며느리가 담당하는 공간이란 인식이 읽힌다. 그 반대편 남쪽에 위치한 부(夫)는 대문 가까운 곳의 사랑방(夫)를 뜻하기도 하여, 바깥일을 위주로 하는 남편의 역할을 의미하고 있다. 또한 남북축으로 사랑방(夫)과 안방(第宅)을 두는 구조여서 가정의 중심이 부부임을 명시하고 있다(Fig. 5). 이렇게 <가취주당도>가 집이란 공간을 기준으로 상정되는 존재를 집주위의 8방위로 배치하여 가정의 중대사를 결정하기 위해 엮은 식궁도(式宮圖)임을 보여준다.
매우 단순한 구성이지만, 이를 통해 전근대 가옥공간과 가족공간 및 음식공간의 인식 면모를 엿볼 수가 있다.
가정의 중심은 부부(夫婦)이며, 방위 상징성으로 남편은 바깥일 하는 남방이고, 아내는 하루가 시작하는 동방의 의미를 부여받았다. 전근대 가족제도 특성으로 아버지(父)와 어머니(母)가 아니라 시어미(姑)와 시아비(翁)로 설정되어 있으며, 며느리와 남편이 떨어져 있는 배치를 이룬다.
무엇보다 8개 방위 중 무려 2개 궁에 서로 비슷한 주방(廚)과 부엌(竈)을 배치한 것은 가정살림의 핵심은 부엌과 주방에 있다는 식공간의 중요성을 인지한 인식체계라 할 것이고, 이를 좌우로 통괄하는 며느리야말로 가취주당도 전체의 추동력이 된다. 이 때문에 <가취주당도>는 시집가고 장가가는 남녀 가취(嫁娶)의 일에 사용하는 것이다.
『명시력』의 가취주당도 설명에서, “무릇 가취일 택일은 대월(大月)의 경우 지아비(夫)를 초하루에 배당하고 북동남서의 시계방향으로 각각을 순행(順行)시키되, 가취일까지 夫, 姑, 堂, 翁, 第, 竈, 婦, 廚의 차례로 세어나간다. 소월(小月)은 며느리(婦)부터 시작하되 반시계로 역행(逆行)하여 조, 제, 옹, 당, 고, 부, 주의 순서로 매일 역행하여 가취일까지 세어나간다. 이 때 가취일이 제(第), 당(堂), 주(廚), 조(竈)의 날을 만나면 쓸 수 있는 길일이고, 만약 그 날에 옹(翁), 고(姑)를 만났으나 옹(翁), 고(姑)가 없는 자이면 또한 그 날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하였다. 며느리(婦)가 옹(翁)ㆍ고(姑)를 꺼린다는 것은 시부모와 며느리 사이의 갈등구조가 택일법식에도 반영되어 있음을 보인다.
주당도 종류는 『가취주당도』 외에, 신부의 신행 날짜를 가리는 <우귀(于歸) 주당도>, 집짓거나 이사할 때 쓰는 <입택(入宅) 주당도>, <이거(移居) 주당도>, 장례와 관련한 <안장(安葬) 주당도>, <출령(出靈) 주당도>, 편안한 신체 위치나 집안 기물 배치에 관한 <안상(安床) 주당도> 등등이 있으며, 8궁의 내용을 달리 한다.
한편, 부엌과 주방(竈廚)이 <가취주당도>에도 분리되어 있지만 정작 우리 전통 가옥에서는 부엌 안에 주방을 두는 구조이다. 이런 때문에 식공간의 위생 문제가 발생하여 서양식 주방 대소(臺所)를 참조하여 개량하려는 움직임이 20세기 전후에 벌어지고 있음을 앞서 살펴보았다.
해방후 최대 민속조사사업인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1969∼1982)를 보면, 민가의 일반 가옥구조가 부엌만 있는 삼칸구조임은 쉽게 만날 수 있다.(Fig. 6, 7) 이런 전통주거관습의 영향으로 지금도 주방과 부엌의 공간을 방으로 구획하여 분리한 경우를 만나기는 쉽지가 않다. 이런 점에서 취사 공간과 식사공간을 분리한 <가취주당도>의 구조가 시사하는 점이 있다고 할 것이다.
음식의 공간학을 논함에 있어 작업가설적 공간범주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먼저 음식을 조리하는 동선을 중심으로 물리적 외형 형태에 관한 물리적 식공간을 설정할 수가 있고, 여기에는 취사도구에 따른 취사공간, 조리에 따른 조리공간, 식기나 식구(食具, 식도구)의 수납공간, 음식물의 보관에 관한 저장공간 등을 나눌 수가 있다.
이에 대해 음식하는 근원적 목적이 무엇인가를 고심할 때, 음식이 인간 생존의 필수 요건이라는 측면만이 아니라 맛있고 좋은 음식을 먹어 무탈무병하는 몸의 건강성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까지 고려하는 합목적적 식공간을 설정할 수가 있고, 이를 필자는 치생(治生)의 식공간이라 이르고 싶다. 그 치생의 목적은 청복(淸福)한 삶의 누림이다.
여기서 청복은 맑은 복을 뜻하며, 그 맑다는 것은 음식과 욕구의 조화로운 관계성을 지칭한다. 곧 음식의 영양학적 효율성이나 풍부성 등을 넘어서서 마음의 식탐과 욕심마저 적절히 조절하여 음식의 조화성과 마음의 청빈성을 추구하는 다분히 친자연적 태도를 일컬으며, 이를 구현하기 위한 일련의 산림살이 동선을 치생(治生) 문화론으로 모아 포괄하고자 하였다.
이 치생과 청복의 키워드는 필자가 조선 후기 실학자 홍만선(洪萬選, 1643∼1715)의 『산림경제』(4권 4책, 1718)를 고찰하는 과정에서 특히 음식에 관한 제9편 「치선문(治膳門)」이 왜 이 자리에 배치되어 있을까를 고민하고서, 그러면 그 앞에 수록된 제3 「치농문(治農門)」 등은 무엇이며, 그 뒤에 따르는 제11 「구황문(救荒門)」이나 제14 「치약문(治藥門)」 등과는 어떤 상관성을 가지는 것인가 아니면 아무런 관련이 없이 그저 서술 차례에 따른 정도인가를 고심하는 중에 발굴한 개념이다. 또한 전체 16개 류문(類門) 중에서 농사를 다루는 편장을 제3 치농(治農), 원예 과수 등에 관한 것을 제4 치포(治圃), 음식장만에 관한 것을 제9 치선(治膳), 약용식물에 관한 것을 제14 치약(治藥)이라 하는 등 편장 제목에 다스린다는 치(治)의 관점이 크고, 더욱이 『산림경제』의 제명에서 ‘경제(經濟)’라는 말 자체가 그 서문에 보이듯 경영하고 관리하는 ‘살이’의 관점이어서 치(治)의 의미를 지닌다.
- ○ 자료 4: 『산림경제』 16문 편장: 권1 卜居, 攝生, 治農, 治圃, 권2 種樹, 養花, 養蠶, 牧養, 治膳, 권3 救急, 救荒, 辟瘟, 辟蟲, 권4 治藥, 選擇, 雜方
이런 점에 착안하여 조선후기 전통시대 치생의 문화론과 생태자연학적 산림사상을 피력하고자 하였다. 흔히 『산림경제』를 조선 후기의 초기 농서로서 혹은 백과전서, 식생활종합서 등의 성격으로 접근하여 왔지만, 필자는 이 계통을 다룬 문헌류를 농서가 아니라 별도의 산림서(山林書)류로 달리 규정할 것을 제기한 바 있고, 여기서 배태된 산림사상은 우리말 ‘살림살이’로까지 조어되었을 가능성도 개진하였다(Kim IG 2017a). 조선 마지막 거질 류서류 문헌인 서유구(1764∼1845)의 『임원16지』(113권 52책, 1827)는 편장구성이 16문 체제인 것까지 『산림경제』를 본으로 삼았다(이성우(1981)는 『식경대전』, p.37에서 『산림경제』가 『증보산림경제』와 『임원16지』 등의 모체(母體)가 되었다고 설파하여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산림경제』가 말하는 청복의 치생론(治生論)적 동선을 훑어보면, “자연-건강-치농-음식-치병-생활”로 전개되는 일상생활의 자연조화적 영위가 깔려 있다. 자세히는 ① 풍기자연과 사람의 조화를 다룬 「복거문」과 ② 건강한 삶의 원리를 다룬 「섭생문」에서 출발하여, ③ 자연농법을 다룬 「치농문」, 「치포문」, 「종수문」, 「양화문」, 「양잠문」, 「목양문」을 거쳐, ④ 일상음식의 준비와 갈무리를 다룬 「치선문」을 다루었고, ⑤ 다시 사후 몸의 안녕과 유지를 위한 「구급문」, 「구황문」, 「벽온문」, 「벽충문」, 「치약문」을 논하였으며, ⑥ 끝으로 인간의 심미적 생활원리에 관계하는 「선택문」과 「잡방문」으로 펼치는 구성이다.
이를 간략히 추리면 “건강한 섭생(攝生)과 건강한 식생(食生)”으로 집약된다. 여기서 섭생(攝生)은 성기욕(省嗜慾) 등 건강한 몸의 보존을 위한 균형된 삶의 방식을 이르고, 그 개요는 “잘 먹고 건강하여 맑게 사는 청복의 삶”의 구현이다. 식생(食生)은 「치농문」의 <치농서>에서 “백성은 식생을 하늘로 삼고, 식생은 농사를 선무로 삼으니, 농사는 진실로 백성의 대본이 되는 일이다”(『산림경제』 1권: 治農序. 民以食爲天, 食以農爲先, 農固民事之大本也.)라 한 것처럼, 먹는 문제는 백성의 하늘이며, 그 먹는 일과 관련하여 ① 농사짓고, ② 거두고, ③ 다듬고, ④ 갈무리하여, ⑤ 건강한 식생활을 영위하는, 일련의 과정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을 이른다.
이렇게 음식의 목적성을 청복한 치생 관점으로 둔다면, 이에 따른 치생의 식공간은 첫째, 음식의 식재(食材)와 식료(食料)를 가꾸어 준비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이를 수확 또는 채취하여 부엌으로 가져오는 일련의 외부적 식농(食農) 과정과 둘째, 이후 음식재료를 다듬고 갈무리하고 조리하는 내부적치선(治膳) 과정, 셋째, 그 조리된 식사를 상차림하고 섭취하고 잘 소화시키는 식사(食事) 과정, 그리고 넷째, 식사후 소화불량이거나 무언가 허약한 몸을 보양하기 위해 동반하는 식료(食療)와 치약(治藥) 등에 관한 식약(食藥)ㆍ식치(食治) 과정으로 구성할 수가 있다.
이 각각의 음식 동선 단계에 따른 ① 식농의 식공간과 ② 치선의 식공간, ③ 식사의 식공간, ④ 식약의 식공간을 설립할만 하며, 이 모두를 아우르는 관점을 ⑤ 치생의 식공간이라 모색할 만하지 않을까 한다. 이렇게 될 때 인간생활의 3대 요건으로 의식주의 한 주축인 식생활의 영역이 지니는 문화사적 위상을 충분히 담아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이상 치생의 식공간 문제를 관점 개발에 따라 더욱 세분하여, 물과 소금, 장과 당, 음료와 식료 등에 관한 식료의 식공간을 별도로 설립할 수가 있고, 무엇보다 주식물과 부식물의 식공간을 분리하여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주식물은 벼, 보리, 밀 등 곡류에 관한 범주이고, 이는 ‘농사(農事)’라는 더욱 커다란 영역에 대한 논의와 접근을 요하게 된다. 농자(農者)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이란 중농의 이념만큼이나 우리나라는 곡물을 주식으로 하는 농경문화권이고, 조선시대 중농책에 따라 농업과 목양은 국가적 관심 사업이었다.
그런데 그 중요성에 비해 역사시대 우리 농사의 현황이 어떠하여 왔는지를 전국적 분포상황으로 연구한 바를 찾기가 어렵다. 주식물의 식공간 연구에 선결해야할 숙제인 것이다. 해방 이후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높게 분리되면서 양자를 넘나들며 융섭하는 연구자 그룹의 출현이 여전히 필요하다. 말로는 현재도 융복합 연구를 논하지만 현실적 장벽으로 인해 실질적 양방면 융합 전문가를 만나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이렇기 때문에 아직도 오곡(五穀)의 정의가 시대적으로 어떻게 변천하여 왔는지 개념 정의가 심화되어 있지 않다. 또 박세당(朴世堂, 1629∼1703)의 『색경(穡經)』(2권 2책, 1676)은 원나라 『농상집요』를 주요 대본으로 삼아 초략하고서 자신의 경험지식을 가미한 농서인데, 그 상권 ‘종곡(種穀)’에서 곡(穀)이 일반 사전적으로 곡식으로 번역되겠지만, 박세당 스스로가 ‘중국 사람들은 화(禾)를 곡(穀)이라 일컫는데, 화(禾)란 조(粟)이다. 오곡 중에서 조(粟)가 가장 으뜸이므로 홀로 곡(穀)이라 칭한다.’(「種穀」[中國人謂禾爲穀, 禾者粟也. 五穀, 粟爲長, 故獨稱穀.] 凡穀, 成熟有早晩, 苗稈有高下, 收實有多少, 質性有强弱. 米味有美惡, 粒實有息耗. 이 구절은 원나라 『농상집요』에서 초략한 대목임)고 주석한 것처럼 여기 본문에 나오는 곡(穀)은 ‘조’로 해석된다(Kim IG 2016b). 또, 콩을 뜻하는 글자로 두(豆), 숙(菽), 태(太)가 있고, 왜 그렇게 불리는지 천착할 필요성도 발생한다. 이처럼 주식물의 식공간 연구에는 상당히 지난한 험로가 놓여 있다.
이 문제가 우리말 쓰임새나 번역어 문제로 연결되면 더욱 어려움을 만나게 된다. 조선초 『세종실록지리지』(1432년 成書, 1454년 편찬)의 팔도물산지 부분을 고찰하여 보면(Kim IG 2017a: 135-174), 당시 지리지 편찬자들도 오곡의 종류가 복잡한 문제를 피력하고 있다. 경기도 광주목(廣州牧) <토의조(土宜條)>의 오곡에 대해, 당나라 경학가 안사고(顔師古)의 주석과 주자의 해석 권위를 따라서 ‘기장[黍], 피[稷], 콩[菽], 보리[麥], 벼[稻]’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곧 오곡의 첫째를 기장으로 파악하고 벼를 마지막으로 인식한 서ㆍ직ㆍ숙ㆍ맥ㆍ도(黍稷菽麥稻)의 5종 관점이다.
그런데 필자가 『세종지리지』 수록의 경상도 안동대도호부관할 18개 부군현 곡물 내역을 일일이 통계처리하여 분석한 결과, 주곡물의 빈도와 순서가 ‘조-벼-기장-콩-보리’의 속도서숙맥(粟稻黍菽麥)으로 파악되었다. 조는 18개 군현이 모두 재배하는 가장 범용 작물이었고, 콩은 14개 고을에서, 보리는 10개 고을로 수록하여 오곡 중 가장 낮은 빈도를 보인다. 이런 경향성은 그렇다면 조는 17세기 『색경』 단계까지도 곡식의 대표로 인식된 지속성을 보이는 흐름이라 하겠고, 또 경상도 지역에서 보리가 후대와 달리 가장 낮으므로 조선초기에 이제 막 경작 보급되는 단계를 뜻하는 것은 아닐까 추정된다.
또 『세종지리지』의 「팔도물산총론편」 <전부조(田賦條)>를 분석하면, 미곡 종류가 도미(稻米), 경미(粳米), 세경미(細粳米), 점경미(粘粳米), 조미(糙米) 혹은 나미(糯米), 속미(粟米), 직미(稷米), 서미(黍米) 등 알곡의 세분된 형태 묘사 명칭을 쓰고 있다. 이를 우리말로 환원하면, 볍쌀(稻米), 찹쌀(糯米), 기장쌀(黍米), 좁쌀(粟米), 핍쌀(稷米)의 5종류로 정리할 수가 있다. 볍쌀 안에는 다시 메벼에 대한 멥쌀(粳米), 매조미쌀(糙米)이 있는 구조이다. 흥미롭게도 말하자면 당시 주식물로 먹는 곡물에 대해서는 쌀(米)이란 우리말을 붙이는 언어 관습을 읽을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종묘 사직할 때 사직의 직(稷)이 단지 상투어가 아니라 조선 초기에는 주곡물의 한 종류임을 핍쌀(稷米)이란 표현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말 쌀은 국어음운학으로 ‘ㅄ살’ 음가를 지닌 말이어서, 과즙을 ‘속살’이라 표현하듯 알곡을 몸속 ‘살’로 인식한 흔적이 아닐까 한다. 된소리 발음으로 되면서는 ‘ㅂ쌀’로 변한 것이라 보인다. 그러니 된소리 ‘쌀’을 표준어로 인식한 것도 따지고 보면 뒷시대 어느 시기일 것이고, 일부 경상도에서 된소리 발음을 못하고 ‘살’로 하는 것은 오히려 고어형이 보존된 정도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쌀(米)이란 말이 현재 우리는 모두 벼에 대한 볍쌀(稻米)을 지칭하는 것으로 인식하지만, 조선 전반기 당시로서는 좁쌀(粟米)이 그 대표성을 얻어 쌀로 범칭될 여지가 있음을 『세종지리지』 물산지 부분과 『색경』 등에서 도출할 수가 있다.
이상은 주식물인 곡물 문제를 다룸에 있어 만나는 문제 한두어가지를 짚어본 것이며, 그외에도 일제 초기 농업시험장 제도가 운영되면서 곡물의 개량과 생산지 분포 문제 등 더 많은 과제가 놓인다. 밀에 대한 밀쌀이나 옥수수 혹은 수수에 대한 수수쌀 표현이 범용적이지 않은 것은 그만큼 우리식단의 주식물로 인정되지 않은 단계임을 시사하며, 유럽에서는 대항해시대 이후로 주식으로 자리잡은 감자가 우리에게는 여전히 주식물로 수용되지 못하는 문제 등도 흥미로운 곡물의 문명사 연구일 것이다. 경상도에서 보리쌀을 보쌀로 줄여 널리 부르는 것은 이들에게 보리가 불과 얼마전 6, 70년대까지 가장 일반적 주식물이었기 때문이고, 전라북도 전주군의 경우는 맥작에서 겉보리가 아니라 쌀보리[裸麥] 비중이 매우 높아 이를 주식물로 섭용하고 있는 현상 등 근대시기 주식물의 변동과 지역분포 문제도 주목되는 주식물의 식공간 연구 대상이다.
이렇게 주식과 부식물 등에 따른 다른 방법론을 개발하는 것이 음식문물학의 중요한 요령이다. 다음에서 말하는 음식물산지적 접근은 여기에 더욱 필요한 도구이다.
다음 부식물의 식공간 문제로 넘어가면 이 역시 여러 관점 개발이 필요하나, 한두 가지 짚어보자면 주식 곡물이 농사라는 거시 작물재배 영역인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소 규모의 작물재배 관점을 지닌다. 이에 따라 부식물 재배 문제는 민가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서부터 만날 수가 있다. 흔히 채전밭이라 부르거나 텃밭으로 부르는 식공간이 그러하다. 텃밭은 집 안마당 뒷마당에도 만들고, 바로 대문밖 빈땅에 만들 수도 있고, 현대 도시사회에서는 건물 옥상이나 테라스까지도 활용되는 정도이다.
그만큼 연중 짧은 기간을 이용하여 계절성 내지 중소규모성을 지향하는 작물이 부식물 영역이다. 일제 통감부시기부터 시작한 <권업모범장>(1906) 및 이를 확대개편한 일제시기 <농사시험장>(1929) 제도는 1906년에서 1945년까지 도합 40년간 존립하면서 각종 주식과 부식에 관한 작물재배 문제를 주도하여 갔는데, 그 중 <권업모범장> 창설 25주년을 맞이하여 발간한 『조선총독부 농사시험장 25주년기념지』(1931.5)를 통해 당시 재배되었던 부식물의 공간 흐름을 짚어볼 수가 있다 (『朝鮮總督府農事試驗場二拾五周年記念誌』 上·下卷, 朝鮮總督府農事試驗場編, 1931 및 동 번역서, 『조선총독부 농사시험장 25주년기념지』 상하권, 농진청 번역, 2008 참조)(Kim IG 2015c: 203-241).
또한 조선총독부 농사시험장에서 26년간(1918∼1945) 근무하였던 타카하시 노보루(高橋昇)의 유고작 『조선반도의 농법과 농민』(상중하, 2008)은 이 시기 자세한 재배 상황을 보여주는 주목할 만한 민가영농보고서이다. 여기에 각 도별로 농가의 영농실태를 자신이 직접 현장 조사하면서 다양한 메모와 관찰을 남기고 있으며, 각 대상 민가를 기준으로 논밭까지의 거리와 평수, 작물 종류를 기록하고 있다(Takahashi Noboru 2008).
예컨대, 경남 통영군 창선면 부윤리 농가 보고서를 보면, 집에서 가까운 텃밭(垈田)이 200평이고, 여기에 각종 채소를 재배하는데, 그 종류는 마늘, 파, 고추, 시금치, 무우, 배추, 아주까리, 호박, 오이, 가지, 옥수수, 고구마, 강낭콩, 편두, 근대(薯連), 바가지(越川), 상추, 부추 등이라 하였고(중권, p.69), 경기도 수원시 매송면 야방리 현천동 보고서에서 텃밭은 150평이고, 바로 집터 앞에 위치하며, 여기에 보리, 콩, 들깨를 재배하고 있다(중권 p.236)고 기술되어 있다.
이들 일제시기 영농보고서를 식공간 관점에서 재구성하면 매우 그럴듯한 결과물이 도출될 것이다. 이때 부식물은 그 종류가 매우 복합적이어서, 분류 기준을 마련하는 일과 병행할 필요성이 발생한다.
전통식생활식물 분류학 관점에서 접근하면, ‘곡채나과초목(穀菜蓏果草木)’이라는 6단 분류법이 가능하고, 주식과 부식 작물에 집중하자면 ‘곡채나과(穀菜蓏果)’의 4단 분류법 중심으로 접근할 만하다(Kim IG 2014a, Kim IG 2015a).
이들 4단 범주는 우리 식생활에 크게 관계하는 비중에 따라 ‘생활위계’적 동심원 구조의 분류관점을 적용한 체제를 이른다. 주부식 중요성에 따른 음식의 원근법(perspective)이 투시되고 있어서 ‘식생활원근법 동심원 구조’라 이를 수 있다.
제1 범주 곡(穀)은 주식물인 곡물 영역이고, 제2 범주 채(菜)는 가장 가까운 범용의 부식물인 채물이고, 제3 범주 나(蓏)는 현재 쓰지는 않지만 전통시대에는 상당한 의미를 부여 받았던 분류명칭이며, 그 나물(蓏物)은 오이, 호박, 가지 등 지면 가까이 자라는 초실(草實) 부류를 말하고, 제4 범주과(果)는 나무에서 열매를 맺는 목실(木實)의 과실수(果實樹)를 말한다(Kim IG 2016a)(Fig. 8).
이중 채나과(菜蓏果)의 3 범주는 모두가 부식물 작물이며, 재배하는 작물이거나 채취하는 식물이다. 산야에서 채취하는 문제로 인해 약용식물의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각각에 대한 세부 분류는 더욱 복잡하고 난해한데, 관점에 따라 중첩적이기도 하고, 채류와 나류, 나류와 과류, 심지어 곡류와 채류의 경계를 넘나드는 종류도 있다.
또 생활위계적 전통식물분류법과 달리 근대식물분류법은 형태학적으로 치중하여 발달하였고, 그에 따라 구근류(球根類), 엽채류(葉菜類), 향채류(香菜類) 등 다른 방향의 분류법을 수립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참조하자면, 식생활의 식공간 범주와 구성이 더욱 깊어지고 확대될 것이라 기대하게 된다. 예컨대 채소의 식공간 관점에서 그 일련의 동선을 집약시켜낸다면 우리의 전통과 근대음식문화사 이해가 널리 소통되는 근거를 지니게 될 것이다. 그 중에 한 분야를 차지할 예컨대 과류(瓜類)의 식공간은 우리 긴 역사를 통해 현재에까지 깊이 호흡하는 식생활 민속식물로 접근될 수가 있다.
이처럼 곡채나과의 생활식물 식공간 연구는 음식 공간학의 관점을 전혀 다른 차원으로 전개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결 론: 음식학자료의 확장과 다면화
지금까지 다소 두서없이 음식의 공간학인 식공간 문제를 그 접근하는 관점과 자료에 대한 연구방법론 문제를 다루었다. 각 대상 자료의 시대성이 전통시대인가, 근대인가, 현대인가에 따라 분석방법론이 연동하여 달리 마련하여야 하고, 그러자면 자료의 개발과 이를 보아내는 통찰의 힘도 요구된다.
너무나 쉽게 쓰는 의식주라는 연용어조차 새로운 시대적 산물이고 보면, 매 시대나 매 시기마다 해당 사회가 주목한 주된 관심사를 널리 관찰할 필요성도 크다. 그래서 어제까지의 연구는 모두가 역사학적 연구방법론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것이 역사음식학의 출발점이다.
20세기 전후 근대시기는 특히나 산업화로 인한 대량의 식료와 식재가 양산 보급된 시대이고, 또 다루어야할 각 정보분량이 전통시대에 비할 바가 아니어서 이 시기에 맞는 자료물인 근대물산지 자료를 크게 수립하지 않으면 안된다. 마찬가지로 전근대 전통시대 물산 문제는 자료 특성이 다르므로 『세종실록지리지』의 물산지적 재구성 과정에서 보이듯이 그 자료를 적합하게 다룰 수 있는 툴의 개발이 더욱 요구된다. 우리 역사적 음식학 자료의 확장과 다면화 연구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음식문물학은 이러한 각 시대 각종 식생활 물산과 기물을 포함하여 음식의 식재와 조리의 치선 문제까지를 다루려는 방향성을 지니며, 다만 본고에서 분량상 더 이론적으로 나가지는 못하였지만, 음식문화사를 다루는 작업가설적 툴로서 주목할 만한 것이다. 역사음식학이 자료의 시대성을 주목한다면, 음식문물학은 그 자료의 개별성을 중시하는 방법론이다.
본고에서 제기한 치생의 식공간론은 기왕에 전개된 식품영양과 조리 중심의 식공간 영역에서 더욱 나아가, 인간 본질과 심미의 문제까지 음식학이 다루어야 하는 큰 학문분과임을 담아내려는 지향성을 지닌다. 청복한 치생의 삶이란 그러한 건강한 음식남녀의 문제에 다름 아니다.
아무쪼록 인간의 3대 생활 요건인 의식주 생활사의 한 추축을 이루는 식생활사에 걸맞는 거대한 음식의 공간학으로 서 식공간 연구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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